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독의 결단(함대 컬렉션) (문단 편집) === 쇼와 16년 여름의 패전 === 1941년, 중일전쟁의 장기화로 배급제가 시행된 일본과 이들에게 무역봉쇄를 가하는 미국의 [[심해서함]][* 여기서는 단순히 이름만 다를 뿐 서방에서 운용하는 칸무스라는 설정이다. 당시 일본 정부가 귀축영미로 부르며 무슨 괴물인것 마냥 국민들을 세뇌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꽤나 적절한 설정.], 그리고 애초에 일본본토를 공격하지 않고도 해상봉쇄만으로 일본을 패배시킬수 있었다고 보고한 미 전략폭격조사단 폴 닛츠의 발언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폴 닛츠는 1946년 전략폭격조사단에서 전면적 해상봉쇄만으로도 [[도쿄대공습|대규모 폭격으로 도시를 불태우거나]] [[만주 작전|소련을 끌어들이거나]]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원자폭탄]]을 사용하지 않고도 일본을 항복시켰을 것이라면서 르메이 등이 입안한 폭격등의 실효성을 비판했다.] 어느 시골마을의 [[칸무스]] 후보가 되어 일본해군에 입대하는 [[후부키(함대 컬렉션)|후부키]]는 신체검사 결과 구축함 적성으로 해병단에서 훈련을 받게 된다. 그러나 부푼 동경을 품고 들어간 해병단은 구타와 매질, 심지어 훈련병들끼리 서로 죽빵을 치도록 하는 [[가혹행위]]가 횡행하며 칸무스에게 총검돌격과 상륙전 훈련같은 영 도움되지 않아보이는 똥개훈련이나 시키는 곳이었다. 자살자까지 나오는 해병단을 악으로 깡으로 버텨가며 훈련을 통과한 후부키는 제3 수뢰전대 제11 구축대에 배정된다. "귀신의 [[야마시로(함대 컬렉션)|야마시로]], 지옥의 [[콩고(함대 컬렉션)|콩고]], 내일은 [[나가토(함대 컬렉션)|나가토]]에서 목을 맬까"같은 흉흉한 소문과 달리 콩고는 원작대로 유쾌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 나머지 캐릭터들도 단역이기는 하지만 캐릭터성이 원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입대 전 신문이나 라디오 등으로 미국을 공격해야 한다는 말들을 듣고 살아온 후부키의 미국인들은 정신력이 딸려 야마토정신을 따라오지 못한다는 말에 "[[미국인|America 사람]]들에게는 [[양키|Yankee]]정신이 [[영국인]]에겐 John Bull 정신이 있다"며 정신력 타령을 부정하기도 한다.[* 콩고의 이러한 친절때문에 훈련소에서 겪은 막장 분위기에서 잠깐 벗어나나 했더니 갑판사관이 신병을 기지 안내해주는 콩고보고 '''"시국이 불안정 한데 칸무스가 할일이냐!"'''면서 둘에게 싸대기를 갈긴다.] 그러나 아무리 해군이라도 결국 일본 해군. 그들 내부에서도 일본이 직면한 자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동남아시아에 적재되어있는 서구열강의 비축유를 접수하고 동남아의 자원을 접수해 서구를 굶주리게 해야 한다는 막장 계획이 승인되고[* 아닌 말로 연합군에게 비축자원을 뺏어 진격한다는 계획은 비축된 자원들을 적에게 자원을 넘겨주기 전에 불지르고 파괴해버리면 결국 접수할 수 없다는 딜레마에 직면하게 되고 실제로도 [[벌지 대전투|연합군의 야적장에서 기름을 접수해 아르덴에서 몰아낸다던 독일군의 계획]]도 [[무다구치 렌야|일본인은 초식동물이니]] [[임팔 작전|길가의 풀을 뜯어먹어 진격한다]]는 작전계획들이 모두 위와 같은 이유로 실패했다. 사실 추축군에게야 연합군이 전방에 쌓아놓은 자원들이 아쉬웠겠지만 연합군에게는 당장은 비축자원을 손실한 피해가 생기더라도 탄탄한 수송망을 통해 본국에서 물자를 가져올 수 있었으므로 적에게 넘어갈지도 모르는 물자들을 파괴하는걸 크게 주저하지 않았다.] 작전에 대해 실제 교전의 주력을 맡을 하급자들의 소신적인 비판은 모조리 묵살된다. (이후 전황은 실제로도 수뢰전대 등의 하위 함대들이 뼈빠지게 구르고 신형 전함들은 함대결전이 성사될 때까지 전력을 보존하다가 결국 결전 한번 못해보고 다 작살나는 결말을 맞게 된다.) 한편 미국에 의해 석유를 비롯한 자원의 압박을 당해 점점 열악해져 가는 상황에서, 시라누이를 비롯하여 육해군과 정재계의 젊은 엘리트들을 모아 영국의 국방대학교를 모방하여 만든 [[총력전 연구소]]의 일원들은 일본이 전쟁을 벌이면 승산이 없음을 보고하지만[* 보통 세간에서는 1941년을 독일이 소련에게 승승장구하며 파죽지세로 나아간 시기로 기억하지만 총력전연구소에서는 이미 독일의 공세가 모스크바를 앞두고 한풀 꺾여 앞으로 일본의 참전을 요구하는등 발목만 잡을 것임을, 그리고 소련이 실상 미국과 뒤에서 손을 잡고 불가침조약을 위배하지만 일본은 소련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손만 빨다가 결국 상황을 본 소련이 개입할 것임을, 결정적으로 단기결전으로 빠르게 승전하지 못해 미국과의 장기전으로 돌입하면 대량의 수송선을 손실하여 결국 총동원 체제경쟁에서 패배할 것임을 정확히 집는다.], 총력전연구소의 모의내각은 군 통수부에 개입할 권한이 없었으며, 실제 민간 내각으로써도 이미 육군을 비롯한 일본의 수뇌부의 폭주는 그들로서도 막을 도리가 없었고, 해군조차도 말로는 이길리 없는 미국과의 전쟁을 바라지 않는다면서 이대로 협상만 길어지면 비축유가 떨어지고 나서 대함대가 움직이지도 못해 비웃음거리가 된다면서 '''기왕 할거면 미국과 빨리 결착을 봐야한다'''는 식으로 오히려 전쟁을 부추기고 민간 정부는 결국 육군과 해군의 태도에 질려 내각을 총사퇴한다.[* 본래 제2차 고노에 내각은 1941년 4월 미일교섭을 하면서 중국에서 철수하는 대신 만주국을 승인받고, 괴뢰였던 왕자오밍 정권과 국민당 장개석 정권이 연계하여 미국과 반공전선을 만들어가는 방향으로 정책을 잡았다.(일명 미일양해안) 그러나 외무대신이던 마츠오카 요스케가 히틀러, 무솔리니와 세계 분할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는 이 공식석상에서 미일양해안을 엿먹이는 발언을 한데다 마침 독일과 불가침 조약을 맺은 소련과도 추축과 소련이 서로 전쟁을 하지 않을 것이라 보고 상호 불가침 조약을 맺고 돌아와 버렸으며(이는 얼마 가지 않아 [[독소전쟁]] 발발로 오판이 되어버리며, 결국 독일의 발목까지 잡게 된다.), 고노에 내각이 총사퇴후 3차 내각을 재결성했을때는 이미 어전회의에서 남방으로 진출하며 이를 위해서는 영미와 전쟁도 불사한다고 결정되어버렸고, 결국 미국은 이에 반발해 미일양해안을 휴지조각으로 만들고 일본에 자원금수조치를 취한다. 즉, 일본 우익들은 미국이 석유를 끊어서 자위적 차원에서 전쟁을 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자기들이 먼저 나치스에 동조하여 서방 연합국을 침략할 의도를 보여주었기에 미국은 일본의 자산을 모조리 동결하고 일본의 선제공격을 유도했던 것이다. 일본은 그마저도 치졸함의 끝판왕인 선전포고 없는 기습으로 자기들의 조금 남은 정당성도 나락으로 떨어트린 셈.][* 그러나 이 동인지나 쇼와 16년 여름의 패전 원작에서 고노에 내각이 그나마 전쟁을 막아보려던 개념인처럼 나온 것은 그가 대미개전에는 반대 입장을 보였기 때문이지, [[고노에 후미마로]] 역시 전범으로 취급되고 있다. 해당항목 참조.] [[태평양 전쟁]]을 저지할 마지막 안전장치가 사라지자 히로히토는 강경파의 제어를 위해 도조 히데키를 총책임자로 도조 내각을 성립하고 도조는 자신의 입장을 바꿔 강경파들에게 온건책을 제시하나 도조 조차도 그가 시동을 건 폭주기관차를 막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강경파인 도조가 내각의 중심에 올라선 것을 확인한 미국이 제시한 [[헐 노트]]가 일본 본영에 전해진 후 회의끝에 미국과의 전쟁이 결행되어 공격대가 이함한다. [각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